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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함이 생명이다

십년 전이던가, 대학에서 강의하던 것 정리하고 수행하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수행하려면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혹시 하루 종일 앉아만 있으면 몸을 상할까 걱정이 되어 어디 가서 몸 푸는 방법이라도 배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도반의 은사스님이 금정산에서 수행과 운동을 지도하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스님이라 감히 말도 못 붙이고 혼자서 낑낑대다 도반에게 부탁했더니 수월하게 배려해 주었다.

두 달 정도 매일 아침 그곳에서 수련하는 스님들 틈에 끼어서 한 시간씩 운동을 했다. 이제나 그제나 운동에는 영 취미가 없던 터라 매번 뛰고 구르고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루는 어른 스님이 제자들 운동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 가운데서 가장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제자를 지목하더니, 너는 게으르고 편안하게 운동한다고 꾸중을 했다. 그 스님이 영문을 몰라서 눈만 껌벅거리자 노스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도약을 해서 돌려차기를 한 뒤 착지할 때 정확하게 방어 자세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공중에 몸이 떠서 발을 뻗을 때, 발을 탄력 있게 완전히 죽 뻗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공중에 뜬 상태에서 발을 서두르고, 수월하게 엉거주춤 뻗기 때문에 공중에 떠서 찰 때는 편안할지 몰라도 착지할 때 한 바퀴를 다 돌지 않고 반쯤 돌다 멈추니 상대방으로부터 공격당하기 딱 좋은 자세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출가한 이후 처음으로 받은 진한 감동이었다. 그 이후로는 시간도 없고, 수행하러 간다는 핑계로 다시 노스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들리는 풍문으로 노스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린다. 항상 건강하시길!

 

이 얼마나 올바른 가르침인가. 무엇을 하든지 정확함이 생명이다. 대충하면 처음은 편안할지 몰라도 갈수록 꼬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바르고 정확하게 하면 처음은 서투르고 진도도 나가지 않고 지루하고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진행될수록 속도도 붙고 수월해진다.

수행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배나 발을 보다가 망상이 들어오면 알아차림하고 즉각 배나 발의 기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어떤 수행자들은 빠르게 하려고 서두르는 경향이 있는데, 빠르기보다는 정확함이 생명이다. 정확하게 하다보면 속도는 자동적으로 붙게 되어 있다.

 

간혹 “스님은 왜 한 곳에 머무르면서 수행을 지도하지 않고, 부산, 서울, 인도로 그렇게 돌아다닙니까”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수행도량 하나 만들어 편안하게 수행 지도하면 폼 잡고 살기에는 그것이 제격이다.

부처님을 주목하자. 싸-봐띠 (Savathi, 舍圍城) 제따봐나(祇園精舍)에서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 웨루봐나(竹林精舍)까지 700km가 넘는 길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왕복하면서 수행을 전파했다. 그것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오늘날 평화의 가르침,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인 불교는 보리수 아래서의 깨침보다는 오히려 부처님 발품 판 공덕이지, 폼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숨쉴 힘만 있어도 수행을 지도하겠다는 부처님의 원력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쉽고 편안한 길보다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것이 정답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 Buddhapala(PANNA – 2005년 가을호 통권 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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