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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새끼를 기다리며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가슴에 심었다. 어떤 경우라도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이 일에 동참하는 사람은 거두었고, 싫어하는 사람은 잡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은 수행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개는 할 수 있지만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니고, 스스로 하려할 때 조금 도와주는 것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것이다.

 

처음 수행을 완성하고 돌아오니, 속가 처사하는 말이, ‘수행은 스님능력으로 완성했는지 몰라도, 제자를 키우는 것은 복이 많아야 할 겁니다.’ 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 절실히 그 말을 실감한다. 지난 10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겠다고 왔고, 이제 다시 혼자다. 허허롭고 자유로워 좋다. 결국 자기 그릇만큼 수용 할 수밖에 없는 일, 내 그릇이 그 정도니, 이 정도도 만족해야 한다.

 

언젠가 은사인 청하대장로가 혼자말로 ‘제자 하나에 지옥 하나’ 라고 하던 말이 그립다. 그때 얼마나 애를 먹였으면 그렇게 말했는지 부끄럽다. 마을에도 그런지 모르겠다. 자식 하나에 지옥 하나인지?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이 푸른 행성에 최소 두 군데, 처음 붇ㄷ하가 아라한뜨 막가파라에 들어 닙바-나를 성취하고 불교와 싸띠수행을 창시한 붇ㄷ하가야, 지금 메인 센터가 있는 다보산 반냐라마에 수행해방구를 만들자는 원력이었다.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동네 목욕탕 숫자만큼 수행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지 않았고, 사람을 모으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고, 잘 되고 안 되고로부터 초연할 수 있었고, 아마추어처럼 엉성해도 즐거웠다. 우리는 이 일을 즐겼다. 대구 지혜법우 말처럼, 우리는 독립군이다.

다른 사람에게 수행을 보여줄 일 없으니 폼 잡을 일 없고, 사람 모아 정치할 일 없으니 오고 감에 초연할 수 있고, 수행으로 돈 벌일 없으니 누가 와도 반가웠다. 이런 원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일은 단지 우리가 좋고, 우리가 의미있어 할 뿐이다.

 

이 일을 시작할 때, 단순히 내가 하는 강의를 듣고, 뭔가 치밀하고 거창한 것이 있는 줄 알고 왔다, 아무것도 없고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것을 보고 대부분 실망하고 돌아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계획을 하고 말고가 아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뭔가 계획을 세우고 일했다면 오히려 대중을 기만했을 것이다.

그냥 주어진 현실에 충실했을 뿐이다. 자금도 부족할뿐더러, 그나마 있는 몇 사람도 수행하느라 일할 사람도 없었다. 대부분 수행자들은 직장을 가지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거나,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생존문제가 포도청인지라 움직일 수도 없다. 천상 그 사람들이 빨리 은퇴해서 함께 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텐데, 그때는 그들이 변화된 시대현실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간혹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개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아마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거나, 불친절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못하고 모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거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래도 그런 모습이 무척 귀엽기만 하다? 그래도 뭔가 친절교육이나 배려훈련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면서도 다르게 보면, 기존방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원래 특출하기 때문이고, 이 사람들 특징이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지 않을뿐더러, 간섭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한다는 것이다. 좋게 말해서 특별하고, 한 인물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모여 있다. 내 말도 듣지 않는데 누구 말을 듣겠는가?

그냥 그러느니 하자.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삶들은 벌써 다른 곳으로 진작에 떠났다. 이게 여기 매력이자 장점이다. 이렇게 멋있고 잘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왜 여기는 비구스님들이 많지 않습니까? 스님 주변에 비구스님들이 많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누가 올까? 눈 밝은 사람들은 어느 길목 좋은 자리에 가서 편안하게 살려고 하지 누가 고생문이 열린 이곳에 와서, 들을 수 있는 온갖 소리 다 들으며 자신을 위한 수행과 타인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할까? 오는 사람이 더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행여 하는 마음에, 0.1% 가능성 때문에, 마음을 열고 있을 뿐이지, 기존 불교에서 온 사람이 이 일을 할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언젠가 도반이 자신은 현재 스님들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나는 현재 스님들이 희망이라고 했다. 어쨌던 나 자신도 기존불교 장에서 왔으니 말이다. 살다보면 간혹 나처럼 엉뚱하고 미친놈도 있으니, 그 0.1%의 가능성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지금 여기서 함께 수행하는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그들이 성장해서 출가할 때쯤, 현재 우리가 뿌린 씨앗이 싹이 틀 것이다. 벌써 몇 녀석 자라고 있다. 결국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속담이 상식이다.

하기야 내가 이 가사를 입고 고향에 갔더니, 모친이 담배를 맛있게 한 대 피우고 나서, 생뚱맛게 하는 말이, ‘앞으로 집에 오지 말던지, 회색 승복으로 갈아입고 오던지 하란다. 창피해서 삼천포 시내로 나가지 못하겠단다.’ 그냥 웃었다. 낳고 키운 부모도 어색할 정돈데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한게 현실이다. 이것은 선악, 정오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실재다. 그러니 이런 현실을 즐기자. 이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하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그냥 허공에 대고 한번 씩 웃는다. 이 일을 한다고 하니 존경하는 수안대장로가 ‘중은 허공에 대고 떠드는 것이 힘이다’ 라고 하신다. 그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활동한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관심 밖이다. 그저 허공에 대고 떠들어 볼뿐이다. 그게 내 일이다. 허공에 떠드는 것이 내 일이니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기하다.

 

‘일 할 때는 가재 집짓듯이 해라’ 는 큰 사형 향과대장로가 하신 말을 나침반 삼았다. 가재가 집 지을 때, 그냥 돌 밑에 들어가 다리만 살짝살짝 흔들다보면 집이 된단다.

정말 그랬다. 신통방통하다. 처음 인도불사 한다고 땅을 100평인가 샀다고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같잖게 쳐다보기에 머쓱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50평, 100평 씩 주워모은 것이 벌써 2000여 평으로 불어났다. 내 생각으로는 앞으로 5년 뒤에는 1만평으로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사형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면, 내 자신이 먼저 흔들렸을 수도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 참으로 감사한다. 만일 내가 역사와 철학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다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하고 궁금하다.

붇ㄷ하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영락없는 사이비신흥교주에 불과했을 거다. 그리고 당대 대중들이 그렇게 생각할 때도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길을 갔다. 그리고 오늘날 불교가 인도대륙에 튼튼하게 뿌리내렸다.

붇ㄷ하를 믿고 후원한 사람들이, 빔비싸라를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었고, 아난타빈디까나 위싸카를 비롯한 재벌가였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멋있게 보지만 그 당시 사람들 대부분은 붇ㄷ하가 그 사람들에게 아부해서 교단을 유지한다고 비난했다.

불교가 서서히 자리 잡을 때, 붇ㄷ하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 자신의 방 뒤쪽에서 시체가 나오고,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여자가 나타나고, 저녁이면 붇ㄷ하 처소로 출근하고 새벽이면 퇴근하는 여자가 대중들 눈에 띄었다. 사촌 동생은 붇ㄷ하를 죽인다고 설치고, 실제로 네번에 걸쳐 암살을 가행했다. 대부분 모함으로 밝혀졌지만, 그 당시 대중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제자들의 코메디는 상상에 맡긴다.

붇ㄷ하가 45년 동안 활동을 접고 고요히 입멸할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따라온 불교도는 아난과 위싸카를 비롯해 불과 여섯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행복한 분이다. 그 와중에 여섯이나 따라왔으니.레닌이 10월 혁명을 성공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세울 때, 그가 필요로 하는 자금 대부분은 자본가들이 후원했다고 한다.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에 오자, 그를 기다린 것은 독약이었다. 7번의 독살시도 끝에 죽을 때까지 외팔이 제자 한명이 전부였다. 후에 혜가로 알려진 외팔이 제자는 문둥병제자를 한명 두고 죽는다. 그가 승찬이다. 싸띠수행으로 문둥병이 나은 제자는 산 밑에 사는 고아를 데려다 제자로 삼는다. 그가 도신이다. 이렇게 중국 대지에 달마계통 싸띠수행이 뿌리내린다.

신라후기에 당으로부터 달마계통 싸띠수행이 전해오자, 가장 거부한 계층이 오늘날 해인사를 비롯한 교종이었다. 그들은 달마계통 싸띠수행을 마구니 가르침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달마를 팔아먹는 집단이 어딜까? 지눌이 수행으로 돌아가자고 팔공산에서 깃발을 들었을 때, 불과 5명도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만해를 말하지만 만해를 굶어죽인 것은 한국불교였다. 그때는 만해와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다. 그리고 이제 누구나  만해를 이야기 한다. 그래야 폼이 나기 때문이다. 만해가 아니라 포장이 필요한 모양이다.

 

우린들 예외가 될 수 없다. 지난 역사가 경험한 일들을 우리 또한 똑 같이 경험할 것이다. 우리가 완성한 마음과학을 담고 있는 BUDDHA 수행법이 세계불교를 천년동안 먹여 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은 대중들이 모를 것이다. 그것을 알았다면 더 큰 비난과 모함에 직면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제 SATI MASTER 자격을 민간자격에서 국가공인 민간자격으로 만들고, 상담이나 심리학의 한 장을 열고, 마음과학과 싸띠수행을 제3의학으로 발전시키며, 그것은 앞으로 수천 년 동안 불교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또한 몇 사람 눈에 보일까?

 

우리는 무척 행복하다. 신라 말에 최초로 싸띠수행도량 하나 만드는데 150년이 걸렸다. 달마는 겨우 4명 정도 제자를 얻었다. 그런데 우리는 시작한지 10년 만에 한국과 인도까지 수행도량을 만들었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 이게 신기한 일이다.

 

그래도 아마 우리가 갈 길은 달마스타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이 잘되는 것을 더 이상하게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이 일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은 아마 최소 100년은 지나야 대중들 눈에 뛸 것이고,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라야 평가받을 것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평가받고자 한 일이 아니니, 그냥 재미있게 즐기자.

붇ㄷ하, 달마, 레닌 등을 믿고 따른 사람들 모두,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만을 보았다. 그 외 것들은 관심 밖이었다. 그들 또한 귀가 있고 눈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주목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과 의미였다.

 

수행처에서는 수행만 눈에 들어와야 한다. 수행이외 것들이 보이고 들리면 수행은 끝이다. 수행처에서 수행만 볼 수 있는 사람이 대근기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겪는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깨끗한 호텔에도 빨래터나 화장실은 있게 마련이다. 해야 할 사람은 해야 할 이유가 보이고 하지 않을 사람은 하지 않을 이유가 보인다. 이곳은 수행처다. 그러니 수행 때문에 모인 것이라면 수행만 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저런 말로 우리를 평가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들도 머리를 갖고 있는 사람인지라, 자신의 수준에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 사상이나 느낌까지 관리해서는 안 된다.

우리를 비난하고 험담하면, 한편으로는 그들의 지적을 소중하게 받아 참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벌써 견제 받을 정도로 이렇게 성장했나 하고 자부심을 갖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말들이 자장가로 들릴 것이다. 평가 받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평가 받아야 기분이 좋든지 나쁘든지 할 텐데 말이다.
단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행여 우리가 수행지도나 수행하는 사람 후원을 잘못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삶을 즐기자. 현재 우리가 하는 그 모든 것들, 비난에도 흔들리지 말고, 칭찬에도 흥분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이 삶을, 콧노래 부르며 최대한 즐기고 누리자. 단 한번뿐인 삶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함께 한 대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 행복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고,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제 마지막 할 일이 남았다.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인 일이다. 억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생전에 그런 인물이 올지 모르겠다. 늘 하던 말이지만, 한 마리 사자새끼를 기다릴 뿐이다. 여기는 여우나 토끼를 키우는 농장이 아니다. 사자새끼를 가려내는 선불장(選佛場)이다.

여우를 키워 사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자새끼가 와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차지하고 숲속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수행문화다. 그런 인물이 와서 황제로 행세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명예고 자부심이다.

 

그 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는 것이다. 그들이 맘껏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준비해 주는 것이 우리 일이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 Buddhapala(PANNA – 2008 가을호 통권 2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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